- 기뻐할 수 있는 이유(하박국 3장 16-19절)
- 조정도 2025.6.22 조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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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하박국3 : 16 - 19 | 개역개정
-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우리의 삶에 고난이 찾아오고, 아픔이 찾아올 때, 우리는 과연 여호와로 인해 기뻐할 수 있을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박국은 그렇게 말한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8)
본문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는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나무들이다. 그런데 이 나무에 열매가 없다는 표현은 유다 백성에게 닥친 극심한 절망을 상징한다. 당시 유다는 악한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박국은 그런 절망 속에서도 여호와로 인해 기뻐한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과연 우리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사실 하박국도 처음부터 이렇게 믿음의 고백을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분노로 가득했다. 하박국 1장에서는 하나님께 왜 침묵하시냐고 따지며, 절규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3장에 와서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음에도 전혀 다른 고백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박국은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며, 기다렸다. 2장 1절을 보면 그는 “파수하는 곳에 서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응답이 없어 보이고,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징계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유다 백성이 아무리 회개하라고 외쳐도 듣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타락해 있었기에 징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셨다. 비록 심판이 있겠지만,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약속하신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하박국의 고백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절망과 원망이었지만, 점점 기도와 찬양으로 나아간다. 3장은 ‘하박국의 기도’로 시작해, 마지막 19절에서는 믿음의 고백과 찬양으로 끝맺는다. 이 변화는 상황이 나아져서 생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은 더욱 암담해졌지만, 하박국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더 이상 상황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게 되었기에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삶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느냐이다. 우리는 자주 상황에만 집중하고, 환경만 바라본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을 놓친다. 하지만 시선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면,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고, 그분의 선하신 계획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우리는 상황과 상관없이 감사하고, 기뻐하며, 찬양할 수 있다.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놓치는 순간 우리는 문제와 고통만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예수를 바라보면, 믿음으로 기쁨을 노래할 수 있다. 하박국처럼 말이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장진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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