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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남주 (9) 돈 없어 하루 세끼 국수… 고학으로 신학교 졸업
최강인 2015-07-25 추천 0 댓글 0 조회 327

[역경의 열매] 김남주 (9)

돈 없어 하루 세끼 국수… 고학으로 신학교 졸업

첫 임지는 전남 장흥의 15평 교회… 미자립임에도 ‘주의 종’ 1호 배출해

[역경의 열매] 김남주 (9) 돈 없어 하루 세끼 국수… 고학으로 신학교 졸업 기사의 사진
첫 임지였던 전남 장흥군 관산면 성남성서침례교회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남주 총장. 당시 교회 바닥은 흙이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야만 했다.
나는 신학생으로서 말씀, 기도, 구령 훈련에 이어 혹독한 생활 훈련도 받았다. 고학생이었기에 구두닦이, 가게 점원, 양복점 보이, 세탁소 종업원, 문패 외무 사원, 공사판 들통지기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였다. 한 번은 기숙사비가 없어 쫓겨나기도 했다.  

여름방학 때 이용대 형제와 함께 부산 반송 지나 기장 쪽 고촌이라는 마을의 교회를 맡았는데 성도가 적어 생활이 정말 어려웠다. 먹을 것이 없어 가느다란 타래 국수를 작은 석유곤로에 삶아 간장 하나만 놓고 매일 아침 점심 저녁에 먹었다. 열흘 정도 먹으니 속에서 받아주질 않았다. 길가의 호박잎을 따다가 데쳐서 한 달을 먹었다. 나는 지금도 가는 면발의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성서침례신학교를 졸업했다. 제1회 졸업생은 나와 이상천 장기봉 이춘식 서영개 김원배 백월금 정신길 등 8명이었다. 졸업식은 부산 제일성서침례교회에서 거행됐다.  

신학교 졸업 후 목회 첫 임지는 전남 장흥군 관산면 남송리 성남성서침례교회였다. 교회는 시멘트 블록에 나무 서까래를 걸친 뒤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건물로 면적 50㎡(약 15평) 규모였다, 바닥은 흙으로 돼 있었고 전기가 없어 호롱불을 켜야만 했다. 미자립이었기에 서울에서 라스터 선교사가 불광동교회를 통해 우편환으로 보내준 3000원이 한 달 생활비 전부였다.  

나는 당시 성남교회 외에 8㎞ 거리의 동촌교회, 10㎞ 거리의 장환도교회까지 목회자가 없는 관산면 내 3곳의 교회를 맡아 자전거로 순회하며 목회했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워 석유 값도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동네 무당집의 초등학생 딸 자매가 주일학교에 나왔다. 그 아이들이 300원, 200원씩 헌금을 해 호롱불 석유 값을 감당했다.  

그 무렵 길을 가다가 자주 만나던 학생들에게 교회 오라고 전도했는데 두 학생이 찾아왔다. 그들은 구령 상담을 통해 구원을 받은 뒤 달밤에 리어카를 가져오더니 냇가에서 돌들을 주어와 화단을 만들었다. 당시 내겐 초라하지만 두 벌의 양복이 있었는데 한 벌을 한 학생에게 입혀줬다. 그를 신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추천해줬다. 그 학생이 현재 광주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정국연 목사다. 목회하면서 49명의 주의 종들을 배출했는데 길거리 전도로 목사가 된 제1호가 정 목사다. 얼마 후에는 어린이 중고생 청년 할머니 등과 초등학교 선생님 두 분까지 해서 80∼90명 정도 예배에 출석했다.  

6개월 뒤 동촌교회에 친구인 김종식이 목회자로 부임해 서로 오가면서 전도와 심방을 같이 했다. 그는 청년들과 부인들을 많이 전도해 동촌교회의 부흥을 일으켰다.  

우리 둘은 양쪽 동네 청년들에게 몇 차례 위험을 겪어야 했다. 동네에 전과가 있는 청년이 하나 있었는데 종종 날 괴롭혔다. 어느 수요일 밤에는 술을 먹고 와 유리창을 다 깨고는 피 묻은 유리조각을 들고 예배당으로 들어와 옷을 다 찢고 자기 몸에 상처까지 내더니 유리조각을 입에 넣고 씹다가 입속의 피를 뿜어냈다. 모두 피신시키고 나도 피했다. 아침에 가보니 영어공부 할 때 사용하는 야외용 라디오가 다 부서지고 책들도 모두 뒤집어져 있었다. 그는 변상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관산면 소재지에 5일장이 서는 것을 보고 친교센터를 개장하기 위해 준비하다가 입대 통지서를 받았다. 주님께 기도했다. ‘군대 3년, 한시적으로 푸른 세계 선교사로 가겠습니다. 그곳에서 할 수 있다면 군종으로 보내주십시오.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일생 목사로서의 길이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기를 원합니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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