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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교역자주간 평신도 설교 5일
최강인 2016-05-28 추천 0 댓글 0 조회 872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10-17 개역한글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16교역자주간 새벽예배 [5.20(금요일) : 박영길 장로]


고린도교회의 분쟁말씀 (고린도 전서 1 10 ~ 17절)

 

이 책장 저 책장 뒤적거리며 은혜받은 말씀을 메모했던 노트를 찾아 다시 읽어 보도록 만드신 목사님과 예배의 자리에 함께 계신 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바울의 3차 선교여행 중 2차 선교여행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 함께 동역을 시작했던 고린도 교회. 안타깝게 당파가 생겨 분쟁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사도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일치 단결해야한다고 책망하며 권고하는 편지를 쓰게 됩니다.

11절 말씀에서의 분쟁

사람이 모이는 곳, 그곳에 있는 모임은 내 맘 같지 않아 항상 이견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견은 다툼으로 다툼은 소송으로. 더 심각한 경우도 있습니다.

정치적 또는 종교적인 이념에 따라 사느냐 죽느냐의 전쟁이 끊임 없이 행해져 왔었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남자라서 어릴 때 전쟁영화를 보고 자면 꿈속에서 수많은 적들을 죽이던 경험이 있어서 인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죄와 벌이 정비례가 되도록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이견, 다툼이 났을때 제 마음 안에서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시 살리는 여전히 전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12절 말씀! 4개파로 분열되어 각자 자기가 옳다 하며 이름을 드높이려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해 설명해주었고 십자가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편지로 말씀을 주십니다.

교회 ! 오늘날은 Church  그 유래는 주님께 속한다라는 뜻에서 왔지만, 사도바울 당시에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 (밖으로 불러 모으다) 민주주의 근원이 되었던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이 어떤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인 민회를 사도 바울이 차용한 말로써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모임이였습니다.

디아스포라, 그리스어 (흩어진 사람들) 유대인은 앗수르, 바벨론, 헬라, 로마 등 많은 외부적 공격에 의해 세계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 규범, 관습을 지키고 살던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목적은 다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차이나타운, 코리아 타운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사로 부름받아 파송되어 디아스포라 지역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고

이곳에 에클레시아 즉 하나님께 부름받은 자들이 모인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1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같은 말 , 같은 마음, 같은 뜻…..대표기도시 자주 나오며 저 또한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온전히 합하라. 1+1의 개념이 아니라 찢어진 그물을 꿰매듯이 관계를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 ! 하나님께서 자녀 삼아주신 후 서로 부르는 호칭입니다.

부르심! 하나님께서 택정하여 부르실 때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아담을 부르실 때 아담이 숨어버리는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 믿음의 순종 그리고  그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 그두라 아들 6명 중

이삭만이 택정 받았고, 또 이삭의 아들인 에서와 야곱 중 야곱이 택정받았습니다.

그리고 12지파, 예수님 그리고 12제자들.

 형제 일지라도 선택받은 사람은 따로 있었고, 혈연관계가 아님에도 부르시고

선택 받는 다는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며 은혜입니다.

 그 부르심에 순종했던 믿음의 자손, 약속의 자손은 오늘 이 세대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 귀한 부르심속에 바로 이곳 형제 자매로써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11절에 분쟁의 소식이 들립니다.

교회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 사람이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

보이지 않는 교회! 보이진 않지만 예수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신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12절 머리 넷 달린 괴물이 사는 무서운 교회가 되어 있음을 보게됩니다.

 바울파 : 설립자인 바울을 지지하고 추종하는 파

 아볼로파 : 바울의 후임자, (사도행전 18:24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자) 달변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후10:10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고후 11:6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니

/지식은 뛰어났을지라도 말의 전달력이 아볼로보다 부족했음을 알게됩니다. 

 게바파 : 주님께 직접배운 정통 유대인 베드로를 지지하며 율법준수 강조하는 파였으며,

그리스도파 : 말이 그리스도께 속한자라고 주장하지만 이꼴 저꼴 안보고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신앙의 외길을 가는 사람들의 대표적 그룹일수도 있습니다.

과거든 현재든 어느 나라든 혈연/지역/학연/안되면 돌던지면 김이박씨 인데 같은 성씨 등등

좋은 의미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목적일수 도 있으나,

그룹 지어 서로의 유익을 쫓아 생활하 다보면 서로에 대해 판단하게 되고

정죄를 하게 되고 정죄는 분쟁을 야기시키며, 말로 상처 입히고 뒷담화로

서로의 마음과 영혼을 죽이는 전쟁이 일어납니다.

교회가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곳이여야 하는데 지옥을 보여주고 연습하게 만듭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세상사람들은 말합니다. 나는 열심을 다해 잘살려고 노력해서 돈 버는 삶을 사는데 너희들은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 이름으로 서로 잘났다고 유치한 짓거리하고 하나님 이름으로 돈벌려 한다고 손가락질도 하게 됩니다.

또한, 교회 성도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네가 다해먹어라 욕먹고 이 짓 안해 라는 식의 하나님의 일을 그만두게 만드는 영적 피로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버리면 어둠의 권세 잡은 자들이 제일 좋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 여기 계신 분들처럼 묵묵히 하나님의 일을 순종으로 일해야 합니다.

13절 첫번째로 질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 었느냐.

교회는 회사와 같은 조직이 아닙니다.  회사라는 이익을 창출하기위한 조직에서는 한 사람 없어도 표시도 안 납니다.  생명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며 사용 가치가 없어지면 나가라고 합니다. 소모품 취급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유기적 공동체입니다. 유기적 관계 즉 손가락만 살짝 베었음에도 머리가 덩달아 아프고 가끔은 눈물도 납니다. 생명이 연결된 관계이므로 우리 모두 다 귀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지체이기 때문에 교회의 한 성도가 아프면 그 아픔이 내 아픔으로 느껴져야 합니다. 중앙성결교회, 중동성결교회 등등 그 교회의 머리도 예수님이시기에 그 교회 또한 우리의 지체가 되므로 그 교회가 아프면 우리 교회도 아픔을 같이 느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 교회가 욕먹으면 온 교회가 욕 먹는 것 또한  당연한 것입니다.

두번째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히였느냐.

 바울은 십자가를 지고 간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뿐이라고 말합니다.

고집스러운 나. 조금만 잘하면 의로운척 하는 나, 조금만 사용되어지면 잘난척 하는 나.

조금만 불편하면 불평하는 나. 교만은 오직 자기마음의 모습만 보도록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차단시켜버립니다.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단절시킵니다.

이로인해, 자신의 신앙과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과신하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는 사라지고 자신의 선행만 자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분별 못하면 오히려 남들에게 짐이 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드는 사탄의 꼬봉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세번째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냐.

14~16절까지 누구한테 세례를 받았느냐에 따라 편을 가르는것에 대해 질책을 합니다.

세례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의 시작이며 공표이며 선포이뿐이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례를 준 사람이 구원해주는 의지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중심의 교회는 사람의 역량에 의지하게 되고 재정이 풍부한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고 기도가 없어집니다.즉 예수님과의 만남이 사라집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의 중요성. 지난주 셀 인도 말씀 나누는 중에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가에서 예수님 만나 자신의 과거의 기구한 삶을 말해줄 때 선지자 정도로만 알았고 물동이를 버리고 이웃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다시 만난 후 말씀으로 말미암아 참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게 됩니다.

베드로! 깊은 곳에 그물 던지라고 해서 던졌는데 물고기가 배에 가득 참을 보고 유대인이였던

그가 기다리던 메시아라 직감하고,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배를 버리고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반전인 예수님 죽음, 그러나 부활 이후 다시 만남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제자로서 복음전하는 일에 목숨을 다합니다..

사도 바울 율법적 지식으로 예수님은 자신이 배웠던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지식, 배경, 권력등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님의 명령하신 사명대로 살아가는 변화의 역사를 보게됩니다.

저 또한 태어나서 복음 전하는 일꾼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풍요한 삶을 기대하며

살아 갔었습니다. 인생의 역경의 때에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평안교회로 부르시고 은혜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지식으로, 인생의 고통과 고난의 시기, 뭔가 이뤄보고 싶은 소망으로 만난 예수님.

세상적 가치가 아직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어리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적 가치 버리고 다시금 예수님 말씀을 듣게 되어 갈때 영적으로 성숙해져 있는 자신을 보게 되고 풍요한 물질이 아닌 풍요한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워져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17절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이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 지명하신 믿음의 일꾼을 통해 일하십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구주이신 예수님을 알리기 위한 선한 매개체로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관계는 복음 전하다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한 사람이 패하면 다른 사람이 싸워 이겨주는 관계이여야 합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단골 우화입니다.

토끼가 진 이유가 토끼 간이 없어서라는 말도 있고

전날 술을 너무 많이먹어서 해독이 안되서라는 숙취해소 음료 광고를 보기도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토끼가 거북이한테 졌다. 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은 1등 기업이 내년에 부도 맞고 쓰러지는 기업, 사업가들 자주 접하게 됩니다. 토끼가 다시 한번 경주하자고 도전하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토끼가 두번 방심 안 할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그러면 거북이는 자신이 잘하는 수영을 경주하자고 제안하면 됩니다. 그러나 토끼가 수영복 입고오면 거북이의 승리를 자신할 수 없겠지만요.

이처럼 세상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한가지 이상 반드시 갖추라고 합니다. 이사람 부족한 것은 다른 한사람이 매꿔주고 채워주고 나눠주는 삶이 아닙니다. 당장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자만이 승리자이며 원하는 삶입니다. 나눔은 승리 후 선택일 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갖추어야 할까요. 교회에는 사탄의 최정예 멤버가 들어 오게 됩니다.

물에 빠진 사람 도와준다고 역량없이 물에 뛰어 든다면 물에 빠진 사람과 같이 죽습니다. 나쁜 뜻은 아닐지라도 해묵은 이해관계, 세상적 가치의 걱정과 잔소리는 오히려 진리를 전하는 교회의 일을 힘들고 어렵게 하는 방해꾼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시어 시험 받으시고 말씀으로 승리하신 근거로 우리는 말씀으로 무장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간질 시키는 사탄들이 얼씬도 못하도록 해야합니다.

요한복음 1 1~2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태초부터 계셨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자리에 순종하시는  목사님 전도사님, 우리 평안교회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시고 맺어주신 하나님의 섭리안에 있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인생은 십자가에서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예수님 믿음으로 우리는 믿음의 가족으로 만남이 시작 되었습니다. 운동경기에서 감독과 선수는 경기 중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대신 각자 해야 할 일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역할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과 교역자분들의 해야 할 일, 말씀 전하는 일에 집중하도록 가족되신 우리 성도들은 열심히 손발이 되어 동역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살아가야 겠습니다.

사람, 사랑,  

첫글자 사와 ㄹ  이라는 어원이 같은 말입니다.

사람을 발음하며 입술이 닫힙니다.  사랑을 발음하면  입술이 열리게 됩니다..

사람에게 사랑으로 서로의 마음을 열어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야 겠습니다.

10절 말씀!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여 살아가는 우리는

 평안교회 가족입니다.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살아가도록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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