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지기 위한 준비 (마태복음 16장 13-20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3년여의 시간을 함께하시며 가르치고 훈련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자들을 데리시고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도시에 들어가신다. 이곳은 예수께서 평소 사역하시던 갈릴리 지역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이스라엘 북단의 도시로 갈릴리 바다에서 이틀을 걸어야 도달할 수 있는 먼 지역이었다.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이름 자체가 이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로마 황제 가이사와 분봉왕 헤롯 빌립의 이름이 결합된 이곳은, 황제를 위한 신전과 건축물들이 세워져 있었으며,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며 분향하던 곳이었다. 또한 이방 신 바알과 풍요의 신 판(Pan)을 섬기던 우상의 중심지로, 세상의 권력과 부요함, 혼탁한 종교적 가치가 결합된 장소였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가이사랴 빌립보의 중심으로 제자들을 이끄셨다. 세상의 영광과 화려함이 가득한 이 도시에, 초라하고 가난한 제자들이 들어섰을 때, 그들이 느꼈을 위축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진 세속적 가치와 비교되는 자신의 모습은 더욱 또렷이 드러났을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제자들은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한다. 겉보기에 예수님을 존중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으나, 실상은 세상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평가일 뿐이었다. 

  예수께서는 이 대답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다시금 물으신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앞선 대답에 만족하지 않으셨다는 점과,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도시의 현란한 모습,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자기 존재의 초라함이 겹쳐져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과 세상의 유혹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때 베드로가 고백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리스도’는 곧 메시아, 기름 부음을 받은 구원자를 의미하고,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주님을 따르며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바탕으로, 믿음의 고백을 드린 것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으로는 채워질 수 없으며, 비록 자신들이 세상 앞에서는 초라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야말로 참된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언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기뻐하시며, 그것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깨달음임을 밝히신다. 이어 이 믿음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시고, 그 직후 처음으로 십자가의 길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하신다. 이는 곧,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자만이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고백하는 이들의 공동체이다. 이 고백이 있는 자만이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며, 그 길을 따를 수 있다. 오랜 세월 예수님을 믿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분이 누구신지를 진실하게 고백하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다시 한번 이 믿음의 고백을 회복해야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 위에 세워지는 삶이 참된 교회이며, 주님의 제자의 삶이다.

                                                                  장 진 명 목사